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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가 어디에요” “너 이제 납치된 거야”
필리핀 마닐라에서 차로 1~2시간 떨어진 따이따이의 외딴집에 도착하자 동행한 남성들이 꺼내 든 건 길이 40cm의 정글도였다. 전날 호텔에서 필리핀 현지인과 붙은 언쟁을 해결해주고, “값이 싸고 놀기 좋은 술집을 소개해 주겠다”며 호의를 베푼 일당이 순식간에 납치범의 본색을 드러낸 것이다.
이들은 치밀했다. 돈이 많고 필리핀 사정에 밝지 않은 한국인 관광객을 주 납치 대상으로 삼았다. 추석을 맞아 매매계약체결 필리핀으로 휴가를 떠난 30살 홍석동씨는 딱 그들이 타깃으로 삼기 좋은 대상이었다. 그들은 2011년 9월 마닐라의 호텔에서 한 여성과 돈 문제로 곤란해 하고 있는 홍씨를 발견하고 대신 이를 해결하며 홍씨의 호의를 얻었다.
다음날 홍씨와 점심을 먹으며 그가 금품을 충분히 가졌는지 확인하고, 바로 범행을 실행했다. 좋은 술집을 데려다 주 주택연금 겠다며 차에 태웠고 인적이 드문 곳으로 데려갔다. 그곳에 도착하자 정글도로 위협해 홍씨의 옷을 벗기고 양손과 양발을 수갑과 쇠사슬로 묶었다. 이어 홍씨를 협박해 홍씨로 하여금 한국에 있는 부모에게 1000만원을 입금시켰다.
그들은 1000만원을 나눠 갖고선 범행을 은폐하기 위해 홍씨에게 수면제를 먹이고 살해했다. 그리고 범행 장소에 홍씨 간식대 의 사체를 유기했다.



법무부는 24일 필리핀 법무부로부터 영화 범죄도시2의 소재가 됐던 '필리핀 관광객 연쇄 납치 사건'의 주범인 김성곤을 최종인도받았다고 25일 밝혔다. 뉴스1


영화 '범죄도시2'의 소재가 됐던 대학원생 대출 ‘필리핀 관광객 연쇄 납치사건’의 주범인 김성곤의 판결문에 나오는 김씨의 범행이다.
김씨는 이처럼 2008년부터 2011년까지 홍씨를 제외하고도 6명의 한국인 관광객을 납치해 금품을 갈취했다. 김씨를 필두로 한 범죄조직은 여행가이드 행세를 하거나 여행 카페에서 동행을 구하는 척 한국인을 유인한 뒤 차에 태워 총이나 정글도로 피해자들을 도치 협박했다.
법무부는 23일 필리핀 법무부로부터 한국인 관광객을 대상으로 이 같은 흉악범죄를 저지른 김성곤을 최종 인도한다는 결정을 통보받았다고 24일 밝혔다. 김씨는 필리핀에서 저지른 범행과 함께 2007년 경기 안양시의 환전소에서 공범 최세용 등과 함께 여성 직원을 살해하고 1억8500만원을 빼앗고 해외로 도피했다. 이후 필리핀에서 공범들과 함께 조직적으로 납치, 강도, 살인 등을 일삼았다.



2007년 안양 환전소 여직원 살인사건의 범인 최세용과 김종석, 김성곤에 대한 경찰의 공개수배 공고문. [중앙포토]


범행을 이어가던 김씨는 2011년 12월 필리핀 수사당국에 검거돼, 2014년 5월 필리핀 법원에서 총기 등을 휴대한 혐의로 실형을 선고받았다. 그러던 중 2015년 5월 한국 법무부의 지속적인 송환 노력으로 2015년 5월 국내로 임시인도됐다.
임시인도 제도란 ‘한국-필리핀 범죄인인도조약’에 따라, 범죄인 인도 청구국가(한국)가 형사절차를 진행해야 할 경우 피청구국(필리핀)이 자국의 재판이나 형 집행 절차를 중단하고 범죄인을 임시로 인도하는 절차다. 하지만 임시 인도 기간이 지나면 다시 필리핀으로 돌아가 남은 형의 잔여 형을 집행하게 된다.
2015년 5월 김씨의 신병을 확보한 국내 수사당국은 보강수사를 거쳐 그해 6월 김씨를 구속기소했고, 김씨는 2017년 무기징역형을 확정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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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무부, 필리핀 대통령에게 "한국서 엄중 처벌" 친서
이후 한국 법무부는 형 집행 효율성과 한국에서 엄중한 처벌을 원하는 유족들의 의사를 고려해 2019년부터 필리핀 법무부와 최종인도 협의에 돌입했다. 법무부는 지속적인 물밑 협의를 진행하며 법무장관 명의로 필리핀 대통령 등 고위급에 친서를 전달했다.

필리핀 법무부는 협의 초반에는 임시 인도 조약에 맞게 김씨의 재송환을 요구하기도 했지만, 한국 법무부 등은 수차례의 실무협의와 현지 대사관 등 외교채널을 통해 최종 인도의 필요성을 거듭 설명했다고 한다.
2022년 11월 캄보디아에서 개최된 아세안 정상회의에서 열린 양국 대통령 간 회담에 김씨의 최종인도 문제를 의제에 올리는 등 법무부는 지속적인 노력했고, 결국 필리핀 법무부의 최종인도 결정을 이끌어냈다. 필리핀은 2024년 말 김씨의 형량을 감면하는 방식으로 본국 내 잔여형을 없애 김씨의 재송환 필요성을 없앴다고 한다. 이로써 김씨는 필리핀 송환 없이 한국에서 복역하게 됐다.
한편 김씨와 함께 흉악범죄를 저지른 공범 최씨는 2013년 10월 태국에서 국내로 임시 송환된 뒤 법원에서 무기징역이 확정됐고 2017년 10월 최종 인도됐다.
석경민 기자 suk.gyeongmin@joongang.co.kr